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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냥의 가격은 얼마일까? (ft. 조선시대 집값, 노비 값, 공무원 월급)

_수_ 2022. 7. 26.

말 한마디면 1000냥 빚도 갚는다란 속담이 있다. 여기서 1000냥이라는 금액이 실제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라는 것을 아는가? 우리가 1냥이라고 부르는 이 금액또한 사실 상당히 큰 금액이었다. 조선시대 1냥은 현 시세로 계산하면 얼마정도 될까!?

 

조선시대 1냥의 가치

조선시대 화폐 단위

 

사실 1냥은 꽤 큰 단위이다.

 

1냥은 10전이며

1전은 10푼이다.

 

보통 1푼이 엽전 1닢을 가리킨다고 한다.

(cf. 고종 이후 '푼'이라는 단위가 등장하는데 1푼 = 1닢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1냥이 어느정도인지 알기는 어렵다.

단순히 1푼을 10원이나 100원으로 잡아도 현실반영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비교대상이 필요한데..

 

조선시대에는 이 동전말고도 화폐역할을 하는 주요 물품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준1. 조선시대 쌀 가격!

 

  조선시대 쌀 1섬(약160kg)의 가격은 5냥이었다고 한다. 그럼 한 냥 = 쌀 32kg이 된다.

(참고로 쌀 1섬 = 쌀 2가마니이며, 쌀 1가마니는 약 80kg)

  이에 많은 사람들이 요즘 쌀 10kg이나 20kg 가격을 대입하여 당시 1냥의 시세를 많이 구하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되었다. 당시 조선은 지금처럼 적은 인원이 농기계를 이용하여 넓은 밭을 일구는 시대가 아니라, 많은 인원이 넓은 밭을 일구던 시대였다.

(쉽게 말해 지금보다 쌀 값이 훨씬 비쌌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쌀 이외에 다양한 음식을 섭취해 쌀의 수요가 그렇게 높진 않지만, 예전엔 주식이 쌀이었기에 쌀의 수요가 굉장히 높았다. 수요는 많은데 생산하기가 어려워 공급이 많지 않았다면? 당연히 쌀 가격이 지금보다 훨씬 비쌌을 것이다. 

 

  요즘 쌀값은 20kg에 6만원정도 하는데, 32kg이면 약 10만원이된다. 그럼 한냥에 10만원? 정말그럴까?

 

다른 비교대상을 가져와보자!

 

조선시대 최말단 공무원의 월급은 얼마였을까?

 

 

기준2. 조선시대 9급 공무원 월급!

 

조선의 관리는 현재 달마다 월급을 받았던게 아니라, 분기별로 녹봉을 받았다. 다시말해, 1년에 4번 급여를 받았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태종까지는 1년에 2번, 세종때 분기별로 1년에 4번으로 바뀌었다. 그러던 것이 1894년 갑오개혁이후 월급제로 바뀐다)

실제 참봉과 관련 없는 사진 / 명주인지 면포인지 알 수 없는 1필

말단공무원인 종 9품의 경우,

1670년(현종 11년) 기록에 따르면, 쌀 2석, 콩 2석, 포 1필, 명주 1필을 급여로 받았다고 한다.

(cf. 종 9품은 참봉이며, 사또라고 불리던 현감은 종6품 현감이다.)

 

쌀 1석의 가격은 5냥

콩 1석의 가격은 2.5냥

명주 1필 쌀 6말(48kg = 1.5냥)

면포 1필은 쌀 5말(40kg = 1.25냥),

 

이를 모두 쌀로 환산하면, 1분기에 쌀2섬 (320kg) + 콩 2섬(160kg) + 명주 1필(48kg) + 면포 1필(40kg) = 568kg

 

이렇게 1년에 4번을 받았으니, 연봉은 쌀 2272kg이 되겠다.

쌀 1섬 160kg이 5냥이니, 연봉은 약 71냥 정도이다.

(※ 참고로 1석과 1섬은 같은말이다)

 

그렇다면 아까 1냥이 10만원이랬으니 종 9품의 연봉은 710만원일까?

현실에 적용해보면 터무니 없이 작은 금액이다. 그래도 종 9품이면 양반으로 현재 9급 공무원 보다 더 대우가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어느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현 9급 공무원 초봉인 2600만원에 대입해보자. 그럼 약 4배정도 더 상승해야 한다.

 

그럼 1냥은 약 40만원!?

 

다른 물가에 적용했을때도 현재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까?

조선시대 집 값, 노비 가격등은 어땠을까?

 

 

기준 3. 조선시대 집 값, 노비, 말, 소 가격

 

상등말 = 면포 500필 = 쌀 125섬 = 625냥

여노비 = 120필 = 쌀 30섬 = 150냥

남노비 = 100필 = 쌀 25섬 = 125냥

소 = 400필 = 100섬 = 500냥

 

쌀, 면포 가격은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물론 노비나 소, 말 가격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략 이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서울 기와집 가격(1770년대) = 약 300냥

7간 초가집(1간은 1.8m, 방 1칸) = 50냥

3간 초가집(=초가삼간) = 15냥

 

초가삼간은 600만원, 초가 7간은 2천만원, 기와집은 1억 2천만원!

 

조선시대는 지금만큼 집이 안비쌌던 것 같다. 물론 집이 어디에 위치해있냐 그리고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가격이 다르겠지만.. 지금 보다 저렴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하지만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서울 강남이나 경기도권 아파트 값을 생각하면, 기와집이 1억 2천 했다는 것이 현재와 비교했을 때 그렇게 터무니 없이 차이나는 가격은 아닌듯 싶다. 실제로 구한말이 되면 서울 기와집 가격이 천냥에 거래되었다고 하니 현재 집값이 터무니 없이 오른것과도 조금은 유사한 점이 있기도 한 것 같다.

 

 

확실히 농업의 주 동력인 소와 전쟁의 주 도구인 말은 저 시대에는 왠만한 집보다는 비쌌던 것 같다. 특히 말이 비싼 것은 과거 조선시대에도 이야기가 나왔었다고 한다.

 

'노비의 가격이 비싸도 면포 150필을 넘지 않는데 말이 500필이나 된다니, 이는 가축을 중히 여기고 사람을 가벼이 여기는 것'

위와 같은 이야기가 나오며, 노비가격을 올리자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노비가격은 15세 이상  60세이하 남종이 면포 100필로 약 5천만원! 여노비는 면포 120필로 약 6천만원! 

결론

1냥의 가격을 정확히 현재에 대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 당시 비교할만한 대상의 가치들이 그 대상의 현재 가치와 많이 달라서, 하나의 기준에 맞추면 다른 기준이 어긋나 버린다.

 

하지만, 1냥을 40만원에 대입하면, 조선시대 9급 공무원 월급 2800만원, 기와집 1억 2천만원, 최상급 자동차(말) 2억 5천만원등 그럴듯한 결과가 나오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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