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순정이 있다/시(詩)

흉노에게 잡혀간 중국 4대 미녀 왕소군의 시 - 춘래불사춘(봄이와도 봄 같지 않구나)

_수_ 2020. 9. 8.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오랑캐의 땅에는 화초도 없어

봄이 와도 봄같지 않구나

자연히 허리의 띠가 느슨해지는 것은

허리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네

 

 

흉노의 선우(왕)에게 시집간 중국의 4대 미녀 왕소군

오랑캐의 땅에선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는 그 유명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시가 여기에 등장한다

 

타지의 땅에서 자연히 몸이 야위어 가는 것은

몸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왕소군

 

 

 

 

<왕소군에게 흉노의 봄은 정말 슬픈 봄이었을까?>

 

사실..

 

위 시는 왕소군의 시가 아닌 당나라 시대의 동방규(東方虬)라는 시인의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시다.

총 3수로 이루어진 이 시의 3번째 수로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라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시어가 굉장히 유명하다.

 

그리고 봄이 와도 봄같지 않다고 말한 동방규의 시와는 달리.. 왕소군은 흉노로 가서 꽤 주도적인 삶을 살았으며, 그곳에서 흉노와 한나라의 화친에 힘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미인박명이라고 운명은 기구했다. 흉노로 시집을 간 것 자체가 기구하다고 볼 수 있지만 가서 흉노의 왕(호한야 선우)에게 시집을 갔는데 그 왕이 노쇠하여 3년만에 사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흉노의 풍습에 따라 그 장자(약제 선우)에게 시집을 가 딸 둘을 나았다고 한다. (3년만에 사별하였던 왕과의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또 맏아들이었던 약제선우와의 결혼 생활은 11년만에 왕이 사별하여 32세의 나이에 또 다시 혼자 되었다.

 

 

 

 

<미인박명? 미인은 명이 짧고 팔자가 기구할까?>

 

하지만, 사실 알고보면 그렇게 박명한 삶은 아니었다.

 

중국 한나라의 궁녀로 들어간 왕소군은 왕을 제대로 만나지도 못한채 궁녀로써 수년을 보낸다. 당시 궁녀가 너무 많았던 중국은 왕이 궁녀를 일일이 다 만나지 못하고 궁중 화가가 그려준 초상화를 본 후 이쁜 여자들만 골라서 만났다고 한다.

 

그러한 풍토때문에 당시 초상화를 그려주는 궁중화가에게 뇌물?을 줘서 더 이쁘게 그려달라고 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왕소군은 집안이 너무 가난했는지 아니면 얼굴에 자신이 있었는지 궁중화가 모연수에게 전혀 뇌물을 주지 않아, 당시 궁중화가인 모연수가 왕소군의 얼굴을 못나게 그렸다고 한다.

 

 

 

 

그렇게 궁중에서 왕도 못만난채 몇년을 보내고 있다가 흉노의 왕비로 갔으니, 그리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배우기로는 야만인 같은 느낌의 흉노로 배웠지만, 당시 흉노의 국력은 한나라 이상이었거나 그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의 국력을 가진 나라라면 그 수도 또한 굉장히 부유하고 융성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비록 32세의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되긴 하였지만, 72세까지 살았다고 하니.. 그 시대에 왕비로써 72세까지 산 삶이 그렇게 박명이라고 까진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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